몽산포 일기
- 이 정 하 -
1
그대와 함께 걷는 길이
꿈길 아닌 곳이 어디 있으랴만
해질 무렵 몽산포 솔숲 길은
아무래도 지상의 길이 아닌 듯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건너가는
참으로 아득한 꿈길 같았습니다.
어딘가로 가기 위해서라기보다
그저 함깨 걸을 수 있는 것이 좋았던 나는
순간순간 말을 걸려다 입을 다물고 말았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우리 속마음
서로가 모르지 않기에,
그래, 아무 말 말자. 약속도 확신도 줄 수 없는
거품뿐인 말로 공허한 웃음 짓지 말자.
솔숲 길을 지나 해변으로 나가는 동안
석양은 지기 시작했고, 그 아름다운 낙조를 보며
그대는 살며시 내게 어깨를 기대왔지요.
함께 저 아름다운 노을의 세계로 갈 수는 없을까.
그런 생각으로 내가 그대의 손을 잡았을 때
그대는 그저 쓸쓸한 웃음만 보여줬지요.
아름답다는 것,
그것이 이토록 내 가슴을 저미게 할 줄이야.
몽산포 해지는 바다를 보며
나는 그대로 한 점 섬이고 싶었습니다.
그대에겐 아무 말 못했지만
사랑한다, 사랑한다며 그대 가슴에 저무는
한 점 섬이고 싶었습니다.
2
걷다보니 어느덧 돌아갈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여전히 바다는 우리 발 밑에서 출렁이고 있었는데
우리는 이제 제 갈 길로 가야 합니다.
또 얼마나 있어야 이렇게 그대와 마주할 수 있을지,
이런 날이 우리 생애에 또 있기나 할는지,
둘이서 함께 한 이 행복한 순간들을
나는 공연한 걱정으로 다 보내고 말았고,
몽산포,그 꿈결같은 길을 걸으며
나는 예감할 수 있었습니다.
내 발 밑에서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처럼
그대 또한 내 삶의 한 가운데
밀려왔다 기어이 밀려가리라는 것을.
그대와의 동행이 얼마간은 따뜻하겠지만
더 큰 쓸쓸함으로 내 가슴에 남으리라는것을,
몽산포, 그 솔숲 길 백사장은 그대로 있겠지만
그대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으리라는 걸.
몽산포, 그 꿈결같은 길,
아아 다시 돌아와야 하는 길을 간다는 건
못내 쓸쓸한 일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