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이야기318 여행 여행 - 정 호 승 - 사람이 여행하는 곳은 사람의 마음뿐이다아직도 사람이 여행할 수 있는 곳은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의 오지뿐이다그러니 사랑하는 이여 떠나라떠나서 돌아오지 마라설산의 창공을 나는 독수리들이유유히 나의 심장을 쪼아 먹을 때까지쪼아 먹힌 나의 심장이 먼지가 되어바람에 흩날릴 때까지돌아오지 마라사람이 여행할 수 있는 곳은사람의 마음의 설산뿐이다 ................................................................................ 마지막을 고하는 연잎 하나그래이제마음 편히긴 여행을 떠나려무나 - 서귀포시 법화사에서 - 2025. 1. 20. 그 어둡고 추운, 푸른 그 어둡고 추운, 푸른 - 이 성 복 - 겨울날 키 작은 나무 아래종종걸음 치던그 어둡고 추운 푸른빛 지나가던 눈길에끌려 나와 아주내 마음속에 들어와 살게 된 빛 어떤 빛은 하도 키가 작아쪼글씨고 앉아고개 치켜들어야 보이기도 한다 ............................................................................... 마른 풀꽃들 사이로 보이는투명한 빛이찬 공기를 밀어내며내게로 들어왔다 그 아침에. - 서귀포시 법화사에서 - 2025. 1. 15. 희망가 희망가 - 문병란 - 얼음장 밑에서도고기는 헤엄을 치고눈보라 속에서도매화는 꽃망울을 튼다. 절망 속에서도삶의 끈기는 희망을 찾고사막의 고통 속에서도인간은 오아시스의 그늘을 찾는다. 눈 덮인 겨울의 밭고랑에서도보리는 뿌리를 뻗고마늘은 빙점에서도그 매운 맛 향기를 지닌다. 절망은 희망의 어머니고통은 행복의 스승시련 없이 성취는 오지 않고단련 없이 명검은 날이 서지 않는다. 꿈꾸는 자여, 어둠 속에서멀리 반짝이는 별빛을 따라긴 고행길 멈추지 마라. 인생항로파도는 높고폭풍우 몰아쳐 배는 흔들려도 한 고비 지나면구름 뒤 태양은 다시 뜨고고요한 뱃길 순항의 내일이 꼭 찾아온다. .............................................................................. 2025. 1. 3. 단풍 단풍 - 이 상 국 -나무는 할 말이 많은 것이다그래서 잎잎이 제 마음을 담아내는 것이다봄에 겨우 만났는데 벌써 헤어져야 한다니슬픔으로 몸이 뜨거운 것이다그래서 물감 같은 눈물 뚝뚝 흘리며계곡에 몸을 던지는 것이다 ......................................................................................... 잎이 다 진 나무들 사이에붉은 잎 몇 개안갯속에서 마지막 인사를 하는 것 같다 헤어짐이 아쉬운 순간이다 - 말찻오름에서 - 2024. 11. 25. 사랑 사랑 - 나 태 주 - 목말라 물을 좀 마셨으면 좋겠다고속으로 생각하고 있을 때유리컵에 맑은 물 가득 담아찰랑찰랑 내 앞으로 가지고 오는 창 밖의 머언 풍경에 눈길을 주며그리움의 물결에 몸을 맡기고 있을 때그 물결의 흐름을 느끼고 눈물글썽글썽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아주는 어떻게 알았을까, 그는한 마디 말씀도 이루지 아니했고한 줌의 눈짓조차 건네지 않았음에도 ------------------------------------------------------------------------- 사랑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그저 마음으로 통하는 것이로구나 - 제주의 대숲에서 - 2024. 11. 17. 엄마 걱정 엄마 걱정 - 기 형 도 - 열무 삼십 단을 이고시장에 간 우리 엄마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엄마 안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금 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아주 먼 옛날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 누구나 한번쯤은아니 수 없이엄마를 기다려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 때가 나의 가장 좋은 시절이였던 것 같다 ( 제주의 대숲에서 ) 2024. 10. 7. 어느날 문득 어느날 문득 - 마 종 기 - 어느날 문득 뒤돌아보니까 60년 넘긴 질긴 내 그림자가 팔 잘린 고목 하나를 키워 놓았어 봄이 되면 어색하게 성긴 잎들을 눈 시린 가지 끝에 매달기도 하지만 한 세월에 큰 벼락도 몇 개 맞아서 속살까지 검게 탄 서리 먹은 고목이 어느날 문득 뒤돌아보니까 60년 넘은 힘 지친 잉어 한 마리 물살 빠른 강물 따라 헤엄치고 있었어 정말 헤엄을 치는 것이었을까 물살에 그냥 떠내려가는 것이었을까 결국 어디로 가는지 묻지도 못한 채 잉어 한 마리 눈시울 붉히며 지나갔어 어느날 문득 뒤돌아보니까 모두 그랬어, 어디로들 가는지 고목이나 잉어는 나를 알아보았을까 열심히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뚝심이 없었던 젊은 하늘에서 며칠 내 그치지 않는 검은색 빗소리 ---------------.. 2024. 9. 23. 구월의 시 구월의 시 - 조 병 화 - 인간은 누구나 스스로의 여름만큼 무거워지는 법이다 스스로 지나온 그 여름만큼 그만큼 인간은 무거워지는 법이다 또한 그만큼 가벼워지는 법이다 그리하여 그 가벼움만큼 가벼이 가볍게 가을로 떠나는 법이다, 기억을 주는 사람아 기억을 주는 사람아 여름으로 긴 생명을 이어주는 사람아, 바람처럼 물결처럼 여름을 감도는 사람아 세상사 떠나는 거 비치파라솔은 접히고 가을이 온다. ..................................................................................... 구월도 이제 절반이 지나고 있다 몹시도 뜨거웠던 올여름 구월 중순이 된 지금도 덥기만하니 이제 구월도 여름이라 해야 할 것 같다. 여름동안 축 늘어졌던 몸과 마음.. 2024. 9. 15. 이슬의 꿈 이슬의 꿈 - 정 호 승 - 이슬은 사라지는 게 꿈이 아니다이슬은 사라지기를 꿈꾸지 않는다이슬은 햇살과 한 몸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이슬이 햇살과 한몸이 된 것을사람들은 이슬이 사라졌다고 말한다나는 한때 이슬을 풀잎의 눈물이라고 생각했다때로는 새벽별의 눈물이라고 생각했다그러나 이슬은 울지 않는다햇살과 한몸을 이루는 기쁨만 있을 뿐이슬에게는 슬픔이 없다 ................................................................................................................ 이슬을 풀잎의 눈물새벽별의 눈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라지는 것에 대한아쉬움과 미련이 있어서그런 것 같다. - 서귀포시 법화사에서 - 2024. 9. 2. 이전 1 2 3 4 ··· 3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