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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이야기301

겨울 사랑 겨울 사랑 - 고 정 희 - 그 한 번이 따뜻한 감촉 단 한 번이 묵묵한 이별이 몇 번의 겨울을 버티게 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벽이 허물어지고 활짝 활짝 문 열리던 밤의 모닥불 사이로 마음과 마음을 헤집고 푸르게 범람하던 치자꽃 향기, 소백산 한쪽을 들어 올린 포옹. 혈관 속을 서서히 운행하던 별, 그 한 번의 그윽한 기쁨 단 한 번이 이윽한 진실이 내 일생을 버티게 할지도 모릅니다. ....................................................................................... 눈은 몇 날 며칠 지치지도 않고 내려서 한라산을 다 덮고 너른 목장까지 희게 만들었습니다. 저 속에서도 꽃 피던 날들이 있고 훈풍이 불던 날도 있었겠지요. 날씨.. 2023. 12. 25.
겨울나무 겨울나무 - 이 재 무 - 이파리 무성할 때는 서로가 잘 뵈지 않더니 하늘조차 스스로 가려 발밑 어둡더니 서리 내려 잎 지고 바람 매 맞으며 숭숭 구멍 뚫린 한 세월 줄기와 가지로만 견뎌보자니 보이는구나, 저만큼 멀어진 친구 이만큼 가까워진 이웃 외로워서 더욱 단단한 겨울나무 ............................................................................................ 빈 가지로 서 있는 겨울나무가 안쓰러워 자꾸만 자꾸만 물 위로 파문을 그려본다. - 서귀포시 중문동 색달천에서 - 2023. 12. 9.
세월의 학교에서 세월의 학교에서 - 최 승 자 - 거리가 멀어지면 먼 바다여서 연락선 오고 가도 바다는 바다 섬은 섬 그 섬에서 문득 문득 하늘 보고 삽니다 세월의 학교에서 세월을 낚으며 삽니다 건너야 할 바다가 점점 커져 걱정입니다 -------------------------------------------------------------------------------------- 햐~ 완전 내 마음을 대변한 시로구나. - 제주시 애월읍 동귀포구에서 - 2023. 12. 1.
대작 대작 - 이성선 - 술잔 마주 놓고 서로 건네며 산과 취하여 앉았다가 저물어 그를 껴안고 울다가 품속에서 한 송이 꽃을 꺼내 들고 바라보고 웃느니 바라보고 웃느니. ................................................................................ 캔 막걸리 하나 놓고 나 한잔 들꽃 한잔 아무도 없는 저 오름에서 그렇게 보낸 시간이 있었다. 지나고 보니 참으로 소중하고 나를 성숙케한 시간들이었다. 자연이 사람을 품어주는 것 참으로 아늑하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 서귀포시 안덕면 원물오름에서 - 2023. 11. 21.
가을은 저쪽에 가을은 저쪽에 - 문태준 - 감나무를 우두커니 멀리서 말없이 바라보듯이 빈집 반쯤 무너진 돌담 곁에 섰지만 붉은 감들이 연신 바람을 안고 흔들흔들하듯이 농담에 잇몸을 드러내고 햇살 속에 웃는 듯이 가을 내내 감들이 가을의 가지에 덜렁덜렁 매달려 있었던 것을 한눈팔다 오늘 처음 보게 된 듯이 노동을 끝내고 이제 좀 쉬려는 가을은 저쪽에 ------------------------------------------------------------------------------------- 한라산에는 첫눈이 내렸다 모든 등산로가 통제된 날 이제 가을은 내가 할 일은 모두 다 했다는 듯이 이 모든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ㅡ 서귀포시 남원읍 하례리에서 - 2023. 11. 14.
가을 가을 - 함 민 복 - 당신 생각을 켜놓은 채 잠이 들었습니다. ,,,,,,,,,,,,,,,,,,,,,,,,,,,,,,,,,,,,,,,,,,,,,,,,,,,,,,,,,,,,,,,,,,,,,,,,,,,,,,,,,,,,,,,,,,,,, 우리들의 가을은 어떤 것일까요? - 한라산 둘레길에서 - 2023. 11. 5.
서귀포 사람들의 말대로 서귀포 사람들의 말대로 - 이 생 진 - 서귀포 사람들의 말 '우린 좋은 줄 모르고 산다니까' 한라산 1100 고지를 넘어오면서 눈(雪)을 만나 눈물이 나다가도 서귀포에 오면 눈물이 마른다니까 해가 웃는다더니 모슬포는 울어도 서귀포는 웃는다니까 뒤에 두고 온 모슬포에게 미안할 때가 있다 ........................................................................................................................... 한라산에는 눈이 내려 눈물이 날 정도로 추워도 서귀포에 오면 햇빛이 난다. 가을이 오는 9월에 서귀포의 계곡 바위위엔 보랏빛 제비꽃이 활짝 피었다. - 서귀포의 계곡에서 - 2023. 9. 26.
태양초 태양초 -장 석 주 - 붉고 메마른 것이 우리에게 왔다. 금엽 햇빛을 쪽쪽 빨아먹고 혈소판마져 투명해졌구나. 가난하고 천하면서 뻣뻣한 것, 너는 본향을 잊었구나. 비릿한 게 마르면 가슴 더 붉어지고 몸뚱이는 가벼워지는가! ......................................................................................................................................... 비록 그 수량은 적지만 햇빛 잘 받으며 마르고 있으니 태양초 맞지요? -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에서 - 2021. 11. 7.
그리운 굴뚝 그리운 굴뚝 - 고 두 현 - 마디 굵은 더벅손으로 토담집 서까래에 씨앗 한줌 매달아 놓고 늘상 너털웃음 좋았다. 남새밭 이랑 갈아 하필 감자만 심으려던 할배의 진내음이 구석 넝쿨호박처럼 정다웠다. 백능산 넘어 해가 지고 옛집 뒤안 환하게 밝히는 군불, 그 시절 곰방대 같은 굴뚝 연기 그립다. ---------------------------------------------------------- 요즘은 아궁이에 밥을 짓지 않으니 굴뚝도 없어졌다. 마을을 돌아다니다 텃밭을 보면 누가 이렇게 가꾸나 하고 궁금해진다. - 제주시 한림읍 옹포리에서 - 2021. 1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