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문득
- 마 종 기 -
어느날 문득 뒤돌아보니까
60년 넘긴 질긴 내 그림자가
팔 잘린 고목 하나를 키워 놓았어
봄이 되면 어색하게 성긴 잎들을
눈 시린 가지 끝에 매달기도 하지만
한 세월에 큰 벼락도 몇 개 맞아서
속살까지 검게 탄 서리 먹은 고목이
어느날 문득 뒤돌아보니까
60년 넘은 힘 지친 잉어 한 마리
물살 빠른 강물 따라 헤엄치고 있었어
정말 헤엄을 치는 것이었을까
물살에 그냥 떠내려가는 것이었을까
결국 어디로 가는지 묻지도 못한 채
잉어 한 마리 눈시울 붉히며 지나갔어
어느날 문득 뒤돌아보니까
모두 그랬어, 어디로들 가는지
고목이나 잉어는 나를 알아보았을까
열심히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뚝심이 없었던 젊은 하늘에서
며칠 내 그치지 않는 검은색 빗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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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사진 수업을 받으러 갔는데
복도 끝에서 걸어오는
익숙한 얼굴을 만났다
오래전에 같이 근무했었던 그녀
퇴직이나 한 사람들이
수업을 들으러 오는 줄 알았는데
현직인 그녀가
그림 수업을 받으러 다닌다고 했다
이제 일 년이면 공로연수에 들어간다는 그녀
세월은
우리 모두에게
공평하게 다가오는 것이로구나
- 제주의 대숲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