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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이야기301

시선 시선 - 원 태 연 - 결국 그대의 시선이 나를 찾으려고 바라본 것이 아니었더라도 멈춰서 돌아본 발걸음이 나를 느껴서가 아니었더라도 그래서 그대가 언제나처럼 무심한 눈빛으로 내게서 시선을 거둘지라도 -------------------------------------------------------------------- 언제나 그곳에 있는 그대들, 그대들을 찾는 내게 오늘, 그대들은 어떤 시선을 보내실건가요? - 서귀포시 안덕면 화순리 해안에서 - 2021. 6. 13.
별밥 별밥 - 서 상 영 - 우물로 내려와서 목욕하던 별들은 엄마가 바가지로 물을 퍼서 물동이에 담을때, 달아나지도 않았다 그저 헤헤거렸다 엄마가 인 동이물에선 첨벙첨벙 별들이 물장구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다가 살구나무쯤 와서는 슈슈우 - 슈슈 하늘로 다투어 날아갔다 그래서 엄마가 해놓은 아침밥엔 늘 별은 없고 노란 별가루만 섞여 있었다 별가루가 너무 많아 오래 씹어야 삼킬 수 있는 날도 있었는데 그때 나는 아직 어리고 무식해서 그걸 옥수수밥이라고 불렀다 ........................................................................................................ 옥수수밥, 노란 별가루가 가득한 그 밥 지금은 별미로 먹겠지만 어려웠던.. 2021. 6. 9.
바다들의 이별 바다들의 이별 - 마 종 기 - 해안을 떠나는 바다는 이별이 아쉬워, 늦은 밤까지 소리 죽여 울고 또 울지만 몇 해쯤 후에 다 자라면 밀물이 되어 돌아오게 되는 것은 아직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구나. 그래서 슬피 우는 바다여, 우리는 어차피 어디로 가는지 한순간의 방향도 모르고 산다. 내가 당신을 만나리라는 기대의 여정도, 단지 다짐하며 믿고 있을 뿐이다. 돌아오려고 해안을 긁어대다 피 흘리며 떠나는 바다여, 우리들의 행색이 다 그렇거니 기진한 바다의 젖은 눈이 지나간 날의 나신을 보고 있다. 허물어진 몸을 세우고 돌아올 바다 앞에 선다. ................................................................................................ 2021. 6. 3.
인생에 관한 짧은 노래 살아 있는 내가 나여서 기쁘고 하늘이 새파라니 즐거워라 시골의 오솔길들이 반갑고 이슬 내리니 좋아라. 해나 간 다음에 비가 내리고 비가 내린 후에 해가 나니, 할 일이 끝날 때까지 사람 사는 것이 이런 식이니, 우리가 할 것은 고작 우리 지체가 낮든 높든 하늘로 더욱 가까이 마음 자라게 하는 일이니. - 라렛 우드워스 리즈 - .................................................................................................................... 도서관에서 시집을 뒤적이다 만난 시. 마음이 평온해 지는 시다. 2021. 4. 24.
그리운 나무 그리운 나무 - 정 희성 - 나무는 그리워하는 나무에게로 갈 수 없어 애틋한 그 마음 가지로 벋어 멀리서 사모하는 나무를 가리키는 기라 사랑하는 나무에게로 갈 수 없어 나무는 저리도 속절없이 꽃이 피고 벌 나비 불러 그 맘 대신 전하는 기라 아아, 나무는 그리운 나무가 있어 바람이 불고 바람 불어 그 향기 실어 날려 보내는 기라 ................................................................................................................................................ 가지를 뻗고 꽃을 피우고 벌 나비 불러도 대답이 없는지 나무는 이제 뿌리를 버리고 스스로 바다로 내려왔다. - 서귀포시 안.. 2021. 4. 19.
지금 세상은 가을을 번역중이다 ,,, 지금 세상은 가을을 번역중이다 - 이 수 정 - 구름이 태어나는 높이 나뭇잎이 떨어지는 순서 새를 날리는 바람의 가짓수 들숨과 날숨의 온도 차 일찍 온 어둠 속으로 숨어드는 고양이의 노란 눈동자 밤새 씌어졌다 지워질 때 비로소 반짝이는 가을의 의지 고르고 고른 말 이성적인 배열과 .. 2019. 10. 25.
있는데 보이지 않는 ,,, 있는데 보이지 않는 - 심 재 휘 - 흐르는데 멀어지는 것, 가벼운데 느려지는 것, 소리 없이 서서 마르는 것, 가만히 있는데 흔들리는 것들은 모두 다 어 쩔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러나 있는데 보이지 않는 것만큼 속 수무책인 몸은 없다. 작은그늘이 큰 그늘 속으로 들어가듯 사라지지 않았는.. 2019. 10. 24.
가을엔,,, 가을엔 - 황동규 - 가을엔 이별의 앞차를 타리 길 뚫려 미리 터미널에 나가 시간 안 찬 차 타듯. 길 양편에서 손짓하는 억새들을 지나 그 뒤를 멋대로 색칠한 단풍들을 지나 낯익은 도시의 바뀐 모습에 한눈 팔다가 광장 한구석 조그맣고 환한 과일 좌판 위에 낙엽 한 장으로 ,혈맥(血脈) 한.. 2019. 10. 14.
제주수선화 1 ,,, 제주수선화 1 - 김 순이 - 어머니는 겨울마다 수선화를 한 아름 꺾어 오신다 사투리로밖에 말할 줄 모르는 내 고향 처녀 같은 들꽃 가난한 친구들에게 한 다발씩 보낸다 한 송이 마다 한 번씩 아픈 허리 구부린 내 어머니의 수고를 그들이 알 리 없건만 마음 빈 자의 제단에서 기름도 없이 .. 2019. 1.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