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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이야기301

우물 우물 - 박형권- 귀뚜라미는 나에게 가을밤을 읽어주는데 나는 귀뚜라미에게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다 언제 한번 귀뚜라미를 초대하여 발 뻗고 눕게 하고 귀뚜라미를 찬미한 시인들의 시를 읽어주고 싶다 오늘 밤에는 귀뚜라미로 변신하여 가을이 얼마나 깊어졌는지 동네 우물에 두레박을 내려 봐야겠다 ........................................................................................................................................ 덥다 덥다 하다 보니 귀뚜라미가 살며시 다가와 울어준다. 이제 가을이 오고 있다면서. 2021. 8. 21.
수도에서 수도에서 - 에리히 프리히드 - " 누가 여기를 다스리나요? " 나는 물었네 사람들은 대답했네. "당연히 국민이 다스리지요." 나는 말했네 "당연히 국민이 다스리지요. 하지만 누가 진짜 이곳을 다스리나요? " ..................................................................................................................... 진짜 누가 이곳을 다스리고 있을까요? 2021. 8. 13.
섬 - 복 효 근 - 파도가 섬의 옆구리를 자꾸 때려친 흔적이 절벽으로 남았는데 그것을 절경이라 말한다 거기에 풍란이 꽃을 피우고 괭이갈매기가 새끼를 기른다 사람마다의 옆구리께엔 절벽이 있다 파도가 할퀴고 간 상처의 흔적이 가파를수록 풍란 매운 향기가 난다 너와 내가 섬이다 아득한 거리에서 상처의 향기로 서로를 부르는, ......................................................................................................................................... 서귀포 앞바다에는 섬들이 있다. 섶섬, 문섬, 새섬, 범섬, 서건도 등등 그중에서 호랑이를 닮았다고 부르는 범섬이 바로 저 섬이다. 천연보호구역.. 2021. 8. 8.
고향 고향 - 장 대 송 - 그곳을 찾으면 어머니가 친정에 간 것 같다 갯물과 민물이 만나는 곳에 나서 겨울 햇살에 검은 비늘을 털어내는 갈대가 아름다운 곳 갈대들이 조금에 뜬 달 아래서 외가에 간 어머니가 끝내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 말하던 곳 둑을 넘어 농로에 흘러든 물에 고구마를 씻는 아낙의 손, 만지고 싶다 ................................................................................................................................ 뜨거운 햇살에 잘 익은 고추, 그 고추를 말리시는 어르신, 누구의 어머니인 줄은 모르겠지만 그 누구는 좋겠다. 고향을 찾으면 반겨주는 어머니가 있어서. - 서귀포시 성산읍 .. 2021. 8. 3.
직박구리 직박구리 - 고 진 하 - 어떤 시인이 꽃과 나무들을 가꾸며 노니는 농원엘 갔었지요. 때마침, 천지를 환하게 물들이는 살구나무 꽃가지에 덩치 큰 직박구리 한 마리가 앉아 꽃 속의 꿀을 쪽쪽 빨아먹고 있었지요. 곁에 있던 누군가가 그걸 바라보다가, 꽃가지를 짓누르며 꿀을 빨아먹는 새가 잔인해 보인다며 훠어이 훠어이 쫓아버렸어요. 아니, 그렇다면 꿀이 흐르는 꽃가지에 앉은 生이 꿀을 빨아먹지 않고 무얼 먹으란 말입니까. ............................................................................................................................... 자연의 눈으로 직박구리를 봐야 하는데 인간의 잣대로 보니 직박구.. 2021. 7. 30.
꽃아 꽃아 - 김 형 영 - 누구 마음 설레게 하려고 웃음 머금고 오는 것이냐. 진달래 연달래 철쭉 웃음으로 무심한 눈들 뜨라고 오는 것이냐. 작년에 피었던 것보다 더 눈부시게 피어서 향기 퍼뜨리려 왔느냐. 꽃아, 네 향기에 젖어 나더러 거듭나라는 거냐. 세상을 다시 걸어가라는 거냐. ....................................................................................................................... 카카오스토리를 했던 시절이 있었다. 요즘 지난해 내가 했던 스토리들이 다시 올라온다. 삼 년 동안 같은 날 연꽃을 올린 적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꽃아, 내 마음 다시 설레게 하려고 너는 그렇게 또, 오는 것이로구나... 2021. 7. 20.
수평선 9 수평선 9 - 김 형 영 - 이제 네 마음 알았으니 그냥 거기 있거라. 더 다가가지 않을 테니 달아나지 마라. 너를 그리워할 곳이 여기라면 여기서 기다리마. 한처음 하느님이 그리움 끝에 테를 둘러 경계를 지었으니 그냥 여기서 바라보며 그리워하마. 내 마음 실어 나르는 출렁이는 파도여. 넘을 수 없는 그리움이여. ...................................................................................................................................................... 테트라포드에 앉아 있는 새 두마리 한 마리가 날개를 펴고 부지런히 구애중이다. 가만히 앉아 있는 새 한마리 네 마음 알았으니 이제.. 2021. 7. 15.
능소화 능소화를 볼 때마다 생각난다 다시 나는 능소화, 하고 불러본다 두 눈에 가물거리며 어떤 여자가 불려 나온다 누구였지 누구였더라 한번도 본 적 없는 아니 늘 담장 밖으로 고개를 내밀던 여자가 나타났다 혼자서는 일어설 수 없어 나무에, 돌담에 몸 기대어 등을 내거는 꽃 능소화꽃을 보면 항상 떠올랐다 - 박남준의 "당신을 향해 피는 꽃" 중에서 - ............................................................................................................................................................. 파란 지붕아래 그녀, 오늘도 그대는 현무암 돌담에 몸을 기대어 세상을 구경하고 있군요. 2021. 7. 1.
수국을 보며 수국을 보며 - 이해인 -​ 기도가 잘 안 되는 여름 오후 수국이 가득한 꽃밭에서 더위를 식히네 꽃잎마다 하늘이 보이고 구름이 흐르고 잎새마다 물 흐르는 소리 각박한 세상에도 서로 가까이 손 내밀며 원을 이루어 하나 되는 꽃 ......................................................................................................... 한 다발의 희망이 피네 요즘 제주도는 가는 곳마다 수국이 한창이다. 유명한 곳에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연일 SNS에 그 모습들이 올라온다. 한적한 곳을 지나다 만난 수국. 화려하진 않지만 그 소박한 모습에 마음을 빼앗긴다. - 제주의 중산간에서 - 수국처럼 둥근 웃음 내 이웃들의 웃음이 꽃무더기로 .. 2021. 6.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