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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이야기

바람의 말

by 제주물빛 2010. 6. 4.

                           바람의 말

 

                                     마종기

                  우리가 모두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지는 마.

                  나 오늘 그대 알았던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 나무 하나 심어 놓으려니
                  그 나무 자라서 꽃 피우면
                  우리가 알아서 얻은 괴로움이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릴거야.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린다.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 모든 일을
                  지척의 자로만 재고 살 건가.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면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 이 시는 마종기 시인이 1977년이나 1978년에 쯤 미국에서 영구 귀국을 여러가지 이유로 포기해야 시기에

           잊을수 없는 조국을 대상으로 쓴 시라고 합니다.

 

           널리 아낌을 받은 이 시를 읽고 예순 살 정도의 분이  시인에게 다음과 같은 사연을 보냈다고 합니다

 

           "   그 분은 1년전 사랑하고 존경하던 남편을 폐암으로 잃었다. 남편이 긴 투병 중 점점 쇠약해져가던

              말기의 어느 하루, 옆에서 간호하던 자기에게 남편이 종이 한 장을 내밀며 언제  한번 시간이 날 때

              읽어보라고 했다. 그때는 정신도 없고, 환자와 함께 자신도 피곤하고 침울해져 있던 때라, 그러마고

              말만 하고 잊고 지냈다.  그 얼마 후 남편이 죽고 장례를 치르고 남편의 유품과 병실에 남아 있던 물건을

              태우고 정리하던 중에, 갑자기 남편이 죽기 전에 자기에게 전해준 그 종이가 나왔다.

              그 종이에는 남편이 직접 쓴 시 한 편이 적혀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시가 바로 선생이 쓴 

              시 였다는 내용이었다.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

              이 시를 읽고 또 읽다가 너무 고마워서 이렇게 내 주소를 알아내고 감사의 편지를 보낸다는 것이다.

 

             " 당신의 시가 죽은 내 남편을 내 옆에 다시 데려다주었습니다. 나는 그가 그리울 때면 이 시를 

              읽습니다. 그러면 어디에 있다가도 내 남편은 내 옆에 다시 와줍니다. 그리고 나직하게 이 시를

              내게 읽어줍니다. 이 시가 나를 아직도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어줍니다......... " 

 

  

 

                           - 마종기의 당신을 부르며 살았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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