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
이희중
꽃들아, 미안하다
붉고 노란색이 사람의 눈을 위한 거라고
내 마음대로 고마워한 일
나뭇잎들, 풀잎들아 미안하다
푸른빛이 사람들을 위안하는 거라고
내 마음대로 놀라워한 일
꿀벌들아, 미안하다
애써 모은 꿀들이 사람들의 건강을 위한 거라고
내 마음대로 기특해 한 일
뱀 바퀴 풀쐐기 모기 빈대들아 미안하다
단지 사람을 괴롭히려고 사는 못된 것들이라고
건방지게 미워한 일
사람들아, 미안하다
먹이를 두고 잠시 서로 눈을 부라린 이유로
너희를 적이라고 생각한 일,
내게 한순간 꾸며 보인 고운 몸짓과 단 말에 묶여
너희를 함부로 사랑하고 존경한 일,
다 미안하다
혼자 잘난 척, 사람이 아닌 척
거추장스럽다고 구박해온 내 욕망에게도
작은 것이나 큰 것이나
남을 위해, 사람을 위해 살지 않고
바로 제 몸과 마음 때문에
또는 제 새끼들 때문에 살고 있음을 이제야 알아서
정말 미안하다.
이 시를 읽다 보면 ‘미안하다~내 마음대로’의 시어 사이에서 한 인물이 떠오른다.
선한 눈빛의, 마치 6월의 나뭇잎처럼 윤기 나는 얼굴의 한 시인. 늘 작은, 하찮은 것을 굽어보며
그것의 의미를 되새기는 사람. 그리고 그 작은, 하찮은 대상들에게 겸손히 미안함을 중얼거리는
한 사람. 그의 ‘~들아 미안하다’라는 시구는 ‘순간객관화’를 이룬다. 그 ‘객관화’에 힘입어 시 앞에
앉은 당신은 얼른 ‘순간성찰’을 얻는다.
이 점이야말로 아침마다 시 한 편씩을 읽는 묘미이리라.
<강은교·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