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말
마종기
우리가 모두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지는 마.
나 오늘 그대 알았던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 나무 하나 심어 놓으려니
그 나무 자라서 꽃 피우면
우리가 알아서 얻은 괴로움이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릴거야.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린다.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 모든 일을
지척의 자로만 재고 살 건가.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면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 이 시는 마종기 시인이 1977년이나 1978년에 쯤 미국에서 영구 귀국을 여러가지 이유로 포기해야 시기에
잊을수 없는 조국을 대상으로 쓴 시라고 합니다.
널리 아낌을 받은 이 시를 읽고 예순 살 정도의 분이 시인에게 다음과 같은 사연을 보냈다고 합니다
" 그 분은 1년전 사랑하고 존경하던 남편을 폐암으로 잃었다. 남편이 긴 투병 중 점점 쇠약해져가던
말기의 어느 하루, 옆에서 간호하던 자기에게 남편이 종이 한 장을 내밀며 언제 한번 시간이 날 때
읽어보라고 했다. 그때는 정신도 없고, 환자와 함께 자신도 피곤하고 침울해져 있던 때라, 그러마고
말만 하고 잊고 지냈다. 그 얼마 후 남편이 죽고 장례를 치르고 남편의 유품과 병실에 남아 있던 물건을
태우고 정리하던 중에, 갑자기 남편이 죽기 전에 자기에게 전해준 그 종이가 나왔다.
그 종이에는 남편이 직접 쓴 시 한 편이 적혀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시가 바로 선생이 쓴
시 였다는 내용이었다.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
이 시를 읽고 또 읽다가 너무 고마워서 이렇게 내 주소를 알아내고 감사의 편지를 보낸다는 것이다.
" 당신의 시가 죽은 내 남편을 내 옆에 다시 데려다주었습니다. 나는 그가 그리울 때면 이 시를
읽습니다. 그러면 어디에 있다가도 내 남편은 내 옆에 다시 와줍니다. 그리고 나직하게 이 시를
내게 읽어줍니다. 이 시가 나를 아직도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어줍니다......... "
- 마종기의 당신을 부르며 살았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