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곳에는 아름다운 경치만큼이나 슬픈 전설이 깃들어 있습니다.
아주 먼 옛날 오백 명의 아들을 거느린 한 어미가 있었습니다.
흉년이 든 어느 해 어느 날 아들들이 모두 사냥을 나간 사이 어미는
사냥에 지쳐 돌아올 아들들을 위해 죽을 끓이고 있었습니다.
오백 명의 한 끼 식사이니 그 솥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정성껏 죽을 쑤던 어미는 그만 실수로 펄펄 끊는 솥 속에 빠져버렸습니다.
사냥에서 돌아온 아들들은 이런 사실을 까맣게 모른 채, 고소한 냄새가
풍기는 죽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막내아들만이 어미가 걱정되어 이리저리
살펴보지만 어미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마침내 솥이 바닥을 드러내자 그 속에는 커다란 뼈마디만 남아 있었습니다.
그때서야 아들들은 제 어미의 삶은 죽을 먹은 걸 때달았습니다.
슬픔에 겨운 아들들은 대성통곡하며 울다 그 자리에 바위로 굳었고,
막내아들은 제주 섬을 떠돌아다니다가 섬의 끝자락 차귀도에서 푸른 바다에
몸을 담그고 섬을 지키는 수호신이 되었습니다.
한여름, 한바탕 비가 쏟아진 뒤 영실기암에는 오백 아들의 눈물인양
폭포가 생겨납니다. 슬픈 전설이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었는지, 절경이
서러운 전설을 낳았는지 오랜 세월 바람에 깎이고 시간에 닳은 영실의
바위는 오늘도 그저 의연하기만 합니다.
한여름 뙤약볕 아래 신록이 무르익는 여름,
문득 밥벌이의 고달픔과 규칙적 세상살이에 지친 몸 내려놓고 싶은 날,
그런 날에 영실에 한번 드시지요.
- 오희삼의 한라산편지 중에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