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와
- 정윤천 -
천천히 와
천천히 와
와, 뒤에서 한참이나 귀울림이 가시지 않는
천천히 와
상기도 어서 오라는 말, 천천히 와
호된 역설의 그 말, 천천히 와
오고 있는 사람을 위하여
기다리는 마음이 건네준 말
천천히 와
오는 사람의 시간까지, 그가
견디고 와야 할 후미진 고갯길과 가쁜 숨결마저도
자신이 감당하리라는 아픈 말
천천히 와
아무에게는 하지 않았을, 너를 향해서만
나지막이 들려준 말
천천히 와
천천히 와, 보고 싶은 마음에 버선발로 뛰쳐나온 ‘와’를 슬쩍 뒤에서 잡아당기며
호되게 단속을 시키는 말, ‘천천히’는 기도다.
후미진 고갯길과 가쁜 숨결 걱정에 그리움에 돌을 얹고 기다리는 지극한 자세다.
그 앞에 켜놓은 촛불 같은 말, 정화수 같은 말. 흔하게 주고받는 말 한마디에
이토록 저린 뜻이 숨어 있었구나. <손택수·시인>
- 중앙일보(2010. 10. 26)일자 시가 있는 아침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