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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하는 이야기들

겨울산

by 제주물빛 2011. 1. 12.

 

 

 

                           

                       흰눈 덮인 아득한 설원을 걸어본 적 있으신지요. 내딛는 순간 허리까지 쑥 허물어져가는 지친 몸을

                       일으키며 눈길을 헤쳐 나가 본 적 있으신지요. 숨은 턱까지 차오르고 이마에선 굵은 땀방울이

                       사정없이 흘러내리고 무거운 배낭까지 짊어지고  한 발자국 옮기는 게 얼마나 힘이 드는지 겨울 산의

                       깊은 눈길을 헤쳐 나가는 것은 말 그대로 웬만한 ‘노가다’보다 더 힘든 노동이요 고행의 길입니다.

                       겪어본 사람이라면 아련한 기억 속에 이마에 흐르는 땀범벅이 그리울 법도 합니다.

                       이렇게 겨울 산 설원을 헤쳐 나가는 것을 러셀이라 합니다. ...


                       러셀을 하지 않으면 등산로를 찾지 못해 길을 잃기도 하고 평소 10여분 걸리는 길도 1시간 이상 걸린답니다.

                       그래서 러셀이 되어 있지 않은 겨울 산길은 걸어갈 엄두조차 낼 수 없습니다. 움푹 들어간 한 사람의

                       발자국에 따르는 이들의 발자국이 더해지고 또 뒤를 이어 다른 사람의 발자국이 디뎌질 때마다 눈길엔

                       단단한 하나의 새로운 길이 만들어집니다.

                       처음으로 설원 위에 발자국을 남기는 러셀은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힘든 일입니다.

                       허리까지 빠지는 곳에서 한 걸음을 옮기는 것조차 어려운 법이지요.

                       그래서 러셀을 할 때는 서너 사람이 번갈아 가며 앞장을 서지요. 그래야겠지요.

                       앞장서 걸어본 사람이라면 지금 앞장서서 걷는 사람의 숨소리에서 그 팽팽한 심연의 고통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뒤따르는 이들을 위해 눈을 다지며 나아가는 발걸음은 누군가를 위한 절대희생의 길입니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무아의 길입니다..............


                       무릇 겨울 산에 갈 때는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 깊은 눈 속을 처음으로 걸어갔던 발자국 위로 흘리고 간 땀방울의 마음을 말입니다.

 


                                                         - 오희삼의 한라산편지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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