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림
이태선
나는 다시 난간에 앉아
한 금씩 물이 차이는 귓속 저 너머
샐비어 곪고 있는 더운 땅 냄새를
나무와 나무 사이를
오늘은 무어라 불러야 하나
발끝의 그대는 펄럭이고
나는 그대를 달래어 누이고
그대는 한 사발 선지 같은 편지를 쓴다
물고기들이 지하강을 건너온다고
엉겅퀴 가시가 한층 싱싱하며 빼곡하다고
편지의 낱장들 내 발등에 한 장씩 쌓인다
그대는 오래 떠나가고 있다
아파트 외벽이 침착해질 때마다
내 가슴속 새들이 울기 대회를 끝내지 않을 때마다
나는 낡은 입술의 주인이 되어
그대의 나팔을 무어라며 삑삑 불어야 하나
저녁의 저 조그만 수저를 무어라 불러야 하나
‘가슴속 새들이 울기 대회를 끝내지 않을’ 것 같은그런 지경쯤의
화자의 무언가 억눌린 울음이 침착한 어조에 올라와 있다.
침착한 어조는 어떤 헤어나지지 않는 감정과 심리의 진폭이
그만큼 크기 때문일 거다.
자신의 수저를 자신만이 쥐듯 자신만이 쥔 언어들 내놓는다.
‘그대를 달래어 누이고’ ‘그대의 나팔을 무어라며 삑삑 불고’,
그대의 ‘저녁의 저 조그만 수저를 무어라 불러야 하는지’를
묻는 화자에게 그대는 어리고 소중한 무엇인 것 같다.
그런데 그런 그대가 어찌하여 ‘한 사발 선지 같은 편지를’ 써 보내는가.
더운 땅에서 엉겅퀴 가시를 안고 화자 나는
샐비어 곪듯 곪아간다고 하는 그리움도 있다.
<이진명·시인>
- 중앙일보 시가있는 아침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