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년 여름 우도 바닷가에서 )
바닷가에서
오세영
사는 길이 높고 가파르거든
바닷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보아라.
아래로 아래로 흐르는 물이
하나되어 가득히 차오르는 수평선,
스스로 자신을 낮추는 자가 얻는 평안이
거기 있다.
사는 길이 어둡고 막막하거든
바닷가
아득히 지는 일몰을 바라보아라.
어둠 속에서 어둠 속으로 고이는 빛이
마침내 밝히는 여명,
스스로 자신을 포기하는 자가 얻는 충족이
거기 있다
사는 길이 슬프고 외롭거든
바닷가,
가물가물 멀리 떠 있는 섬을 바라보아라.
홀로 견디는 것은 순결한 것,
멀리 있는 것은 아름다운 것,
자신을 감내하는 자의 의지가
거기 있다
여름의 참을 수 없는 무더움이 주는 미덕들을 생각해 보자.
평안하지 않기에 얻는 평안, 자신을 낮추기에 얻을 수 있는
자신의 높음, 견딜 수 없음이 주는 견딜 수 있음, 어둠의 캄캄한
빛이 있기에 올 수 있는 자줏빛의 여명, 멀리 있기에 아름다운 것들,
홀로 있기에 함께 순결할 수 있는 것들, 스스로 자신을 포기하기에
얻을 수 있는 충족, 고독하기에 함께 있음, 순결하기에 함께 꿈꿈,
에어컨이 결코 줄 수 없는 따스한 시원함, 오늘 그런 것을 찾아보기를.
- 중앙일보 (2010. 7. 27) 시가 있는 아침에서 (강은교·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