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원에서,, 은행잎이 지던 11월 어느 날 ... )
하 늘
-이하석(1948~)
은행나무의 하늘이 노랗게 내려앉는다.
겨울비 오기 전 잠깐 밟아보는 푹신한 하늘.
나무 위엔 봄 여름 가을 내내 가지들이
찔러댔던 하늘이 상처도 없이 파랗다.
가지들이 제 욕망의 잎들을 떨군 다음
겨울 오기 전 서둘러 제 꿈을
바람의 실로 꿰맸기 때문이다.
은행나무 잎비 내린다.
잎비에 얹혀 소복이 내려앉은 노란 하늘이 포근하다.
잎 떨군 은행나무 가지에 닿은 가을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파랗다.
은행나무가 이 땅에 자리잡은 3억 년 전부터 거르지 않고 되풀이한 가을나기 방식이다.
빙하기도 지나왔고, 원자폭탄이 떨어진 죽음의 땅 히로시마에서도 살아남은 질긴 생명이다.
암수가 따로 있기에 어딘가에 서 있을 짝을 향한 그리움을 내려놓지 못했다.
늘 먼 곳을 바라보아야 겨우 사랑을 이루어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얄궂은 운명도
은행나무의 생명을 끊지 못했다.
은행나무 잎비 맞으며 추억에 잠길 수 있는 건
나무와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에게 나무가 전해준 최고의 가을 선물이다.
이 땅의 모든 생명에게 나무가 전하는 큰 축복이다.
<고규홍·나무 칼럼니스트>
-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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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포스팅 해둔 이 글이 새삼스럽게 느껴집니다....
히로시마에 원자탄이 떨어져도 살아 남았다는 은행나무..
은행나무가 그렇게 질긴 생명력을 가진 나무로군요..
은행나무가 노란 잎을 떨구는 시기는 11월과 12월 사이인데,,
그 때가 되면,,, 첫 눈이 내리겠죠...
그때까지,,
아버지가 살아 계셨으면 합니다..
마음이 착잡한 아침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