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화로에서 본 저녁 들판 .. )
공터
- 최승호(1954~ )
아마 무너뜨릴 수 없는 고요가
공터를 지배하는 왕일 것이다
빈 듯하면서도 공터는
늘 무엇인가로 가득 차 있다
공터에 자는 바람, 붐비는 바람,
때때로 바람은
솜털에 싸인 풀씨들을 던져
공터에 꽃을 피운다
그들의 늙고 시듦에
공터는 말이 없다
있는 흙을 베풀어 주고
그들이 지나가는 것을 무심히 바라볼 뿐
밝은 날
공터를 지나가는 도마뱀
스쳐가는 새가 발자국을 남긴다 해도
그렇게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다
하늘의 빗방울에 자리를 바꾸는 모래들,
공터는 흔적을 지우고 있다
아마 흔적을 남기지 않는 고요가
공터를 지배하는 왕일 것이다
이 시에는 나직한 가운데 사방으로 뻗어나가 독보하는 힘이 들어 있다.
옛날에 나는 이것에서 질시나 좌절보다는 존경을 느꼈었다.
평생 이런 시를 써볼 수 있을까, 하고. 무심한 듯 섬세한 시인의 눈이
모래알의 움직임을 살피고, 보이지도 않는 바람들을 본다.
꽃이 피고 도마뱀은 기고 새들은 왔다가 간다.
빈 듯하나 생명으로 일렁대는 공터는 우리가 머무른 세계의 다른 이름일 터이다.
하지만 생명은 일었다가는 지고, 사물들은 입을 다문다.
공터는 역시 빈 곳이다.
그런데 빈 것은 없는 것인데도 이곳을 다스리는 존재가 있다고,
그것이 ‘고요’라고 시인은 말한다. 고요는 무상의 제왕이다.
시인의 눈은 이렇게 안 보이는 것도 보고, 더 안 보이는 것도 본다.
‘법’이라 하든 ‘도’라 하든 형언하면 사라져버리는,
고요라고밖에 달리 말하기 어려운 공한 것이 만상의 배후에 서 있다.
고요로 열고 고요로 닫는 스무 줄짜리 우주.
<이영광·시인>
- 중앙일보 시가있는 아침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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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이 지구상에,,
어느 한 점으로 태어나서 살다가는 우리는
어느 순간 그 흔적도 없이 사라지겠지요..
우주의 고요..
지구의 고요..
누군가가 다스리는 이곳에서..
비록 한 점 발자국을 남겼다,,,
그 발자국마저 사라진다 할지라도,,
오늘 여기에 있기에,,
이 한순간 내 삶을 열어나가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