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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이야기

공터

by 제주물빛 2012. 7. 25.

 

 

 

 

 

 

( 평화로에서 본 저녁 들판 ..  )

 

 

공터



 - 최승호(1954~ )



아마 무너뜨릴 수 없는 고요가


공터를 지배하는 왕일 것이다


빈 듯하면서도 공터는


늘 무엇인가로 가득 차 있다


공터에 자는 바람, 붐비는 바람,


때때로 바람은


솜털에 싸인 풀씨들을 던져


공터에 꽃을 피운다


그들의 늙고 시듦에


공터는 말이 없다


있는 흙을 베풀어 주고


그들이 지나가는 것을 무심히 바라볼 뿐


밝은 날


공터를 지나가는 도마뱀


스쳐가는 새가 발자국을 남긴다 해도


그렇게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다


하늘의 빗방울에 자리를 바꾸는 모래들,


공터는 흔적을 지우고 있다


아마 흔적을 남기지 않는 고요가


공터를 지배하는 왕일 것이다



이 시에는 나직한 가운데 사방으로 뻗어나가 독보하는 힘이 들어 있다.

옛날에 나는 이것에서 질시나 좌절보다는 존경을 느꼈었다.

평생 이런 시를 써볼 수 있을까, 하고. 무심한 듯 섬세한 시인의 눈이

모래알의 움직임을 살피고, 보이지도 않는 바람들을 본다.

꽃이 피고 도마뱀은 기고 새들은 왔다가 간다.

빈 듯하나 생명으로 일렁대는 공터는 우리가 머무른 세계의 다른 이름일 터이다.

하지만 생명은 일었다가는 지고, 사물들은 입을 다문다.

공터는 역시 빈 곳이다.

그런데 빈 것은 없는 것인데도 이곳을 다스리는 존재가 있다고,

그것이 ‘고요’라고 시인은 말한다. 고요는 무상의 제왕이다.

시인의 눈은 이렇게 안 보이는 것도 보고, 더 안 보이는 것도 본다.

‘법’이라 하든 ‘도’라 하든 형언하면 사라져버리는,

고요라고밖에 달리 말하기 어려운 공한 것이 만상의 배후에 서 있다.

고요로 열고 고요로 닫는 스무 줄짜리 우주.


 <이영광·시인>



- 중앙일보 시가있는 아침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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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이 지구상에,,

 어느 한 점으로 태어나서 살다가는 우리는

어느 순간 그 흔적도 없이 사라지겠지요..

우주의 고요..

지구의 고요..

누군가가 다스리는 이곳에서..

비록 한 점 발자국을 남겼다,,,

그 발자국마저 사라진다 할지라도,,

오늘 여기에 있기에,,

이 한순간 내 삶을 열어나가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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