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김혜순
누가 쪼개놓았나
저 지평선
하늘과 땅이 갈라진 흔적
그 사이로 핏물이 번져 나오는 저녁
누가 쪼개놓았나
윗눈꺼풀과 아랫눈꺼풀 사이
바깥의 광활과 안의 광활로 내 몸이 갈라진 흔적
그 사이에서 눈물이 솟구치는 저녁
상처만이 상처와 서로 스밀 수 있는가
두 눈을 뜨자 닥쳐오는 저 노을
상처와 상처가 맞닿아
하염없이 붉은 물이 흐르고
당신이란 이름의 비상구도 깜깜하게 닫히네
누가 쪼개놓았나
흰낮과 검은밤
낮이면 그녀는 매가 되고
밤이 오면 그가 늑대가 되는
그 사이로 칼날처럼 스쳐 지나는
우리 만남의 저녁
지극히 높은 의식의 등고선. 그 자리에서 풀려나오는 고감도의 언어.
백화점의 명품을 하나도 알아볼 줄 모르는 내 눈이 ‘지평선’을 명품으로
찍어놓고는 조바심했다.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데 어떻게 이 명품에게 말을 걸까 자꾸 미뤘다.
원초적으로 우리 목숨은 쪼개진 상처라는 조건에서 시작됐다.
지평선이라는 흔적이 하늘과 땅 사이의 핏물, 윗눈꺼풀과 아랫눈꺼풀 사이의
광활과 눈물로 그것을 말해 준다.
상처들이 맞닿는 저녁은 흰낮과 검은밤 사이의 지평선,
그리운 당신에게로 가는 비상구.
그와 그녀의 사랑 칼날처럼 스쳐 지나 깜깜하게 닫히는 깊은 슬픔의 입구이기도 하다.
<이진명·시인>
-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2011. 3. 4일자) 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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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를 가진자만이,, 상처를 입었던 자만이,, 다른 사람의 아픔을 이해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비상구가 될 수 있다는 표현이 좋네요..
사람과 사람사이에도 지평선이 그어져 있고,,
닿을것만 같은 ,, 그 아득한 지평선에,, 그리움도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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