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씨가 흐리고 안개로 습기가 가득하네요..
오늘 하루, 저 돌하르방 같이 미소짓는 날이 되시길 바랍니다... )
넙치의 시(詩)
- 김신용 -
거대한 바다의 무게에 짓눌려 납작해져 버린,
이제 얕은 물에 담가놓아도 부풀어 오를 줄 모르는 넙치여,
억눌리고 억눌려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른 내장을
삼키고 삼켜, 그만 뒤통수까지 밀려난 눈으로
넙치여, 가슴에 지워지지 않는 한(恨)의 무늬처럼
심해의 밑바닥에 뱃가죽을 붙인 채 엎드려 있었어도
기어코 하늘을 보려는구나, 하늘을 보려는구나
제 이름은 넙치, 광어(廣魚)라 말해야 군침이 돌죠.
제게는 바다가 십자가예요.
몸이 유선형인 놈들은 요리조리 잘도 피해 다니는데, 저는 그걸 다 떠안았어요.
바다가 어린 시절 달고나 기계처럼 저를 녹여서 뭉갰어요.
접시 물에 코 박고도 익사할 지경이에요. 손님들은 저와 접시를 혼동하기도 하죠.
비어져 나온 내장을 삼켰더니 이번엔 눈이 왼쪽으로 밀려났어요.
칙칙한 몸빛은 모래를 흉내 낸 거예요.
그래도 제 안을 열면 순백의 살결을 만나실 거예요.
푸들푸들 떨며 제가 제공하는 순결이죠.
물속의 물속에, 다시 그 아래 땅속에 살지만 두 눈은 한사코 위를 향한답니다.
한 번도 저 위를 향한 간절함을 포기한 적 없어요.
바로 당신처럼.
<권혁웅·시인>
- 중앙일보 시가있는 아침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