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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이야기318

꽃을 위한 서시(序詩) ( 범부채 ) 꽃을 위한 서시(序詩) 김 춘 수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 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 미지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 존재의 흔들이는 가지 끝에서 너는 이름도 없이 피었다 진다. 눈시울에 젖어드는 이 무명의 어둠에 추억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 나는 한밤내 운다. 나의 울음은 차츰 아닌 밤 .. 2010. 8. 16.
호랑나비돛배 호랑나비돛배 고진하 홀로 산길을 오르다 보니, 가파른 목조계단 위에 호랑나비 날개 한 짝 떨어져 있다. 문득 개미 한 마리 나타나 뻘뻘 기어오더니 호랑나비 날개를 턱, 입에 문다. 그러고 나서 제 몸의 몇 배나 되는 호랑나비 날개를 번쩍 쳐드는데 어쭈, 날개는 근사한 돛이다. (암, 날개는 돛이고 .. 2010. 8. 13.
떠다니는 노래 떠다니는 노래 마종기 허둥대며 지나가는 출근길에서 가로수 하나를 점찍어두었다가 저문 어느 날 그 나무 위에 새 둥지 하나를 만들어놓아야지. 살다가 어지럽고 힘겨울 때면 가벼운 새가 되어 쉬어가야지. 옆에 사는 새들이 놀라지 않게 몸짓도 없애고 소리도 죽이고, 떠다니는 영혼이 아는 척하면 .. 2010. 8. 10.
길 마종기 높고 화려했던 등대는 착각이었을까, 가고 싶은 항구는 찬비에 젖어서 지고 아직 믿기지 않지만 망망한 바다에도 길이 있다는구나, 같이 늙어가는 사람아, 들리냐, 바닷바람은 속살같이 부드럽고 잔 물살들 서로 만나 인사 나눌 때 물안개에 덮인 집이 불을 낮추고 검푸른 바깥이 천천히 밝.. 2010. 8. 4.
꽃진 자리에 ( 꽃 진 자리에 열매가 맺혔네요~~ ) 꽃 진 자리에 문태준 생각한다는 것은 빈 의자에 앉는 일 꽃잎들이 떠난 빈 자리에 앉는 일 그립다는 것은 빈 의자에 앉는 일 붉은 꽃잎처럼 앉았다 차마 비워두는 일 빈 의자를 바라본다. 거기 누군가 앉았었다는 생각을 한다. 누군가 거기 앉아서 한숨 던지던 일이.. 2010. 8. 3.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도종환 저녁숲에 내리는 황금빛 노을이기보다는 구름 사이에 뜬 별이었음 좋겠어.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버드나무 실가지 가볍게 딛으며 오르는 만월이기보다는 동짓달 스무 날 빈 논길을 쓰다듬는 달빛이었음 싶어. 꽃분에 가꾼 국화의 우아함보다는 해가 뜨고 지는 일에 고개.. 2010. 7. 31.
우리가 어느 별에서 우리가 어느 별에서 정호승 우리가 어느 별에서 만났기에 이토록 서로 그리워하느냐. 우리가 어느 별에서 그리워하였기에 이토록 서로 사랑하고 있느냐. 사랑이 가난한 사람들이 등불을 들고 거리에 나가 풀은 시들고 꽃은 지는데 우리가 어느 별에서 헤어졌기에 이토록 서로 별빛마다 빛나느냐. 우.. 2010. 7. 30.
사랑법 사랑법 강은교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리고도 남는 시간은 침묵할 것. 또는 꽃에 대하여 또는 하늘에 대하여 또는 무덤에 대하여 서둘지 말 것 침묵할 것. 그대 살 속의 오래 전에 굳은 날개와 흐르지 않는 강물과 누워있는 구름, 결코 잠깨지 않는 별을 쉽게 꿈꾸지 .. 2010. 7. 29.
바닷가에서 ( 작년 여름 우도 바닷가에서 ) 바닷가에서 오세영 사는 길이 높고 가파르거든 바닷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보아라. 아래로 아래로 흐르는 물이 하나되어 가득히 차오르는 수평선, 스스로 자신을 낮추는 자가 얻는 평안이 거기 있다. 사는 길이 어둡고 막막하거든 바닷가 아득히 지는 일몰을 바라보.. 2010. 7. 27.